메일 내용을 곰곰 읽어보니까, 공개해도 그다지 큰 문제가 될 소지도 없겠다 싶어 그냥 공개합니다.

마지막 뱀발은 괜히 썼다 싶군요. ㅎㅎㅎ

하지만 이 글이 제가 원치 않는 곳에 돌아다니는 것은 싫었다.. 라는 정도로 이해해 주셔도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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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 쓰기가 많이 힘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살아온 경험과 님께서 살아오신 경험이 너무 많이 다르다 싶어서, 어떤 언어로 설명을 드려야 할지 난감했다는 점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정치를 잘 모르시는 상태에서, 정치인 유시민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처음 정치인에 대한 지지활동을 시작하신 것으로 이해가 되기에 더욱 더 저의 잘못된 말 한마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 지 모른다는 부담감도 있고, 제가 뭘 얼마나 안다고 떠들 자격이 되는가, 싶기도 하군요.

저는 대학시절 운동권(80년대학번입니다. )에 발가락만 살짝 담궜다가 사회에 나와서 잊고 살았고, 우연한 기회에 개혁당을 시작으로 노사모 열린우리당을 거치면서 나름대로 우리 사회의 현실 정치란 어떤 것인가를 지켜보고 정리를 해 왔습니다. 물론 직접 공직에 출마한다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 어느정도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지켜봐왔다고 생각을 하고는 있습니다.

그런점에서 먼저 제가 지켜본 유시민과, 그에 관련된 최근의 정치적 흐름에 대한 제 관점의 해석을 설명 드리는 것이 좋겠군요.

유시민은 70년대 말 학번으로 당시 70년대를 주도하던 운동권에서는 막내급입니다. 그는 대학시절 프락치 폭행사건으로 형을 산 적이 있고, 그 후 독일에서 공부하다가 귀국하여 칼럼니스트를 거쳐, 티비 토론 프로그램 진행자를 맡기도 했고, 노무현이 뜨기 시작함과 동시에 유명한 "화염병을 들고 바리케이트 앞에 서는 심정으로" 출사표를 던지고 현실정치에 참여한 정치인입니다.

당시 이미 노사모는 어느 정도 형태를 가지고 정치인 노무현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며, 노사모 내부에서는 이미 새로운 형태의 정당 건설에 대한 초기 시도가 있던 상황입니다. 이 시도는 노사모 외부의 386세대의 개혁에의 욕구와 결합되면서, 유시민을 도화선으로 폭발하면서 개혁국민정당의 창당이라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부터 유시민은 친노세력의 일부에게서 지탄을 받기 시작하는데, 물론 당시에는 표면화 되지는 않았지만 갈수록 심해져서 감정적인 대립까지 불러 일으키게 됩니다. 그 최초의 원인은 노사모 내부의 창당 기획의도(당시의 이름은 "정정당당"이었습니다. )를 유시민이 훔쳐다가 개혁당을 창당하면서 써먹었다는 것이죠. 뭐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결국 개혁당은 창당되었고,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노무현을 지지하기로 결의합니다. 지금도 기억 나는 것이 2002년도에 63빌딩에서 거행된 개혁국민정당 창당 발기인대회에서 문성근이 했던 연설입니다. 이 연설은 가히 폭풍같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잠자던 수많은 386들을 일깨워 정치적 행동을 이끌어내게 됩니다.

http://www.maxpd.com/videoView.do?categoryId=112&page=1&index=15420

이후 개혁당에는 유시민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건너온 김원웅의원이 합류하게 되죠.

하여간 비정당조직으로서 노사모의 열풍과 함께, 전혀 새로운 형태로서의 개혁당이 민주당 후보 노무현을 적극적으로 밀면서 2002년 12월 19일의 대선에서는 노무현이 당선되게 됩니다. 이때의 열풍은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규모였으며, 80년대 민주화 투쟁의 과정을 공유하던 386들은 거의 전부가 이 열풍에 동참했다고 보셔도 됩니다. 물론 일부 진보세력은 당시에도 노무현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으며, 태생적으로 보수 정치인인 노무현의 정체성을 비추어 본다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특기할 만한 사건으로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노무현이 민주당으로부터 별다른 지원을 못받고 오히려 거의 배척 당하는 분위기 였으며, 당외 세력인 노사모와 개혁당의 지원으로 대선을 치루게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이는 당시 민주당의 내부 문제와 맞물려 차후에 탄핵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한마디로 해설하자면, 노무현은 당시 민주당의 정체성에 맞는 정치인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그 상징으로 존재하던 것이 민주당 내부의 후단협이었습니다. 민주당 주류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후단협은 막판까지 노무현을 흔들었고, 이에 맞서던 정동영, 천정배등이 향후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이 되게 됩니다.

결국 감동의 1219날, 노무현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게 됩니다. 심지어 노무현은 당선된 것만으로도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 라고 평가를 받을 정도로 획기적인 사건이었으며 대한민국 정치사에 손꼽히는 이변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저도 그 날은 거의 이성을 잃었었죠.

당선 이후는 정치적으로 더욱 극심한 혼란이 벌어지게 됩니다. 두가지 큰 사건이 벌어지는데, 하나는 민주당에서 일련의 의원들이 탈당해서 열린우리당을 창당하게 되는 사건이 있고, 또 하나는 개혁당이 해산되고 유시민 김원웅이 우리당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민주당 탈당파들이 우리당을 창당하는 것은 이미 대선 당시부터 예견될 수 있는 문제였지만, 개혁당이 해산되는 것은 개혁당 내부에 상당한 진통을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결국 무리한 투표와 근소한 차이로 해산파의 승리, 결국 해산후 개별입당 형식으로 우리당에 합류라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해산 과정의 적법성으로 인해 선관위의 지적을 받게 된 사건은 놔두고서라도, 개혁당의 해산 과정에서 벌어진 개혁동력의 무지막지한 손실은 뼈아픈 일이었습니다.

개혁당은 당시 월 만원의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이 오만이 넘는 대규모였습니다. 당시 민노당의 진성당원이 팔천 가량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규모였죠. 인터넷 상의 토론과 의사결정 구조를 갖춘 인터넷 정당이었으며, 당원들이 당의 의사결정을 지배하는 완전한 당원중심의 정당이었습니다.

이러한 정당이 해산되는 과정에서 유시민은 "고래를 삼키는 새우가 되겠다. 즉, 우리당에 들어가 기성정치인들을 변화시키고 기성정당문화를 완전히 뜯어 고치는 싸움을 시작하겠다"는 출사표를 던지고 해산후 개별입당을 주장합니다. 이에 동조해서 우리당에 합류한 초기 개혁당원의 숫자는 천명전후였습니다. 시일이 지나 차츰차츰 옮긴 당원을 모두 고려하더라도 삼천에서 아주 크게 잡아도 오천을 넘지 못할 것입니다.

즉, 90% 이상의 개혁당원은 유시민의 뜻과는 다르게 우리당에 합류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개혁당의 깃발을 접어버린 유시민을 원망하며 다시 사라졌습니다.

지금 시민광장에서 전개혁당원이 나타나서 왜 개혁당 당원 DB를 시민광장에서 활용하고 있는가를 문제삼아 사과를 요구하고 있죠? 개혁당 당원 출신들은 유시민을 지지하지 않는 비율이 훨씬 높았고, 지금의 시민광장의 행태로 인해 그나마 모른척 해주고 그나마 호감을 가져주고 있던 개혁당원들 마저도 등을 돌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배경을 모른다면 그런 주장을 이해하기 힘든 것도 당연합니다.

물론 그중에서도 현실정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가 많았던 당원들은 대부분 우리당으로 옮겨타게 됩니다. 물론 소수이며 이들중 상당수가 우리당내의 참정연을 주도하게 되는거죠.

저의 경우는 그래도 이왕 시작한거,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우리당에 합류했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서는 일부는 우리당에 합류하고 나머지는 연락이라도 오고가고 있는 사람도 있고 완전히 사라진 사람도 있고 하는 실정입니다.

유시민은 우리당이 탄생하기 전에 2003년에 보궐선거를 통해 개혁당 당적으로 의원자격을 획득합니다. 즉, 개혁당은 유시민, 김원웅 두명의 의원을 보유한 당이었다가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탄생한 우리당의 창당정신은 다른게 아닙니다. 바로 창당선언문에 담긴 것이 창당정신입니다. 참고로 퍼오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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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당선언문

우리는 오늘 부패정치, 밀실정치, 지역분열로 얼룩진 구시대를 마감하고, 국민통합, 참여민주주의, 깨끗한 정치의 새로운 시대를 실현할 정당인 열린우리당의 창당을 엄숙히 선언한다.

오늘 우리는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밀실야합으로 날을 지새우고, 틈만 나면 국정의 발목 잡기로 일관하는 당리당략의 낡은 정치, 국민을 분열시키며 기득권을 지켜왔던 지역주의 낡은 정치가 그 생명을 마감하고, 변화와 개혁을 열망하는 국민의 요구와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는 정책정당, 국민참여정당, 국민통합정당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선포한다.

열린우리당의 창당은 지난 대선에서 국민이 보여준 참여정치의 열기를 하나로 결집하여, 국민이 정치의 주인이 되는 참여민주주의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기 위함이며, 정치발전을 가로막아온 망국적인 지역감정과 지역주의 정치를 타파하고 지역과 세대, 계층과 이념, 양성간의 차별을 뛰어넘는 국민통합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함이며,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을 근절하고, 국민의 염원인 정치개혁을 이룩하여 깨끗한 정치, 국민에게 사랑받는 정치를 실현하기 위함이며, 민족을 분열과 대립으로 몰아가는 냉전, 수구세력의 부활을 저지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의 먹구름을 걷어내고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는 동시에 통일한국을 앞당기기 위함이다.

이제 정치가 변해야 한다.

정치권의 변화는 시대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정당, 새로운 개혁주체세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절감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민주화와 개혁을 위해 헌신했던 분들, 산업화시대를 이끌어온 양심적 주역, 새로운 시대정신과 전문능력을 갖춘 분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정치를 염원하는 국민의 힘을 하나로 결집해가는 열린우리당의 출범을 내외에 선포하면서, 국민통합과 정치개혁이라는 우리에게 맡겨진 역사적 소명을 실현하기 위한 우리의 결의를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하나, 우리는 정치발전을 가로막아온 망국적인 지역감정과 지역주의 정치를 타파하고, 지역과 세대, 계층과 이념, 양성간의 차별을 뛰어넘는 진정한 국민통합정치를 실현할 것을 결의한다.

하나, 우리는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을 근절하고, 국민의 염원인 정치개혁을 이룩하는 데 앞장설 것을 엄숙히 결의한다.

하나, 우리는 민족을 분열과 대립으로 몰아가는 냉전, 수구세력의 부활을 저지하고,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남북통일을 이룩하는 데 앞장설 것을 결의한다.

하나, 우리는 지난 대선에서 국민이 보여준 참여정치의 열기를 결집하여, 국민이 정치의 주인이 되는 참여민주정치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해 나갈 것을 결의한다.

하나, 우리는 양심적이고 개혁적인 각계각층의 역량을 총결집하여 다가오는 17대 총선에서 제1당이 되어 국민통합과 정치개혁이라는 우리에게 맡겨진 역사적 소명을 다할 것을 결의한다.

2003년 11월 11일
열린우리당 당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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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습니다.

말씀하신 참여민주주의는 다섯가지 창당정신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이 창당 선언문은 레토릭이 아니라 말 그대로 우리당의 창당 목표라는 것입니다.

지역주의 타파, 정치개혁, 평화통일, 참여민주주의, 제일당 쟁취 등입니다. 이중에 잠깐이나마 이루어졌던 것은 다섯번째 밖에 없군요. 지역주의는 지금의 신당이 오히려 더 조장을 하고 있으니 이를 어째야 할까요?

이렇게 창당된 우리당은 40여명의 중소정당이 되었습니다. 물론 대통령이 민주당을 탈당하여 우리당에 입당해서, 대통령을 보유한 정당이 되긴 했지만 미니정당이었습니다. 이런 이상한 구도는 2004년에 이어지는 총선을 앞두고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상황을 불러 일으키게 됩니다.

이는 다른게 아니고 노무현이라는 대통령 이전의 한 정치인에 대한 기성정치권의 증오에 의해 벌어진 사건입니다.

결국 탄핵은 2002년을 능가하는 국민 전체의 광적인 탄핵반대시위로 인해 무산되고 오히려 바로 이어진 총선에서 우리당을 과반의석을 점유한 거대 정당으로 만들어주게 됩니다. 지금도 기억나는게 여의도와 광화문을 가득 채웠던 탄핵반대의 촛불입니다. 저 역시 그 중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 또한 우리 사회에 내재된 파시즘의 단초를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총선에서 과반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물밑에서는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총선이라는 것은 의석을 다투는 싸움입니다. 그 싸움에 앞서는 것이 바로 당내 공천의 싸움입니다. 아직도 제대로 된 기틀도 못 잡고 있던 우리당에서는 대부분의 공천권이 초기 당의장에 선출된 정동영에 의해서 행사되게 됩니다. 우리당의 당헌 당규에 의하면 상향식 공천, 즉 당원들의 손에 의해서 선출된 자가 의원 후보로 출마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이 원칙은 대부분 무산되고 중앙에서 하향식으로 내려 꽂는 공천이 성행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과정에서 벌어진 세력다툼의 추악한 싸움은 여기서 설명하기가 불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싸움은 탄핵의 열기속에 물밑으로 숨어 버렸고, 이어지는 총선에서 정동영이 당권을 거의 장악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유시민은 무력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유시민이 당내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채택한 가장 강력한 무기는 기간당원제, 즉 당원들의 권한을 극대화 시켜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에 반발한 당권파와 유시민의 갈등은 더욱 심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때, 노사모 출신의 명계남, 이상호(미키루크)는 정정당당에서부터 맥을 이어오던 노사모 내의 행동파들과 함께 국참연이라는 조직을 건설하고 우리당내의 활동을 공식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대선과정에서 밀접한 관계를 쌓아오던 정동영과 행보를 같이하게 됩니다.

즉, 유시민 또는 참정연으로 대표되는 세력과 반대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이들과 유시민 사이에는 여러가지 자잘한 사건으로 인해 감정의 골이 패일대로 패어 있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또 노사모 내부에서도 국참연과 행보를 같이 하기 싫어하는 세력이 주도권을 잡게 되고, 이 때부터 국참연이 궁물, 즉 이권을 쫓는 그룹이라는 비아냥스러운 별칭을 달게 됩니다.

서프에서도 국참연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비판하는 세력이 주도권을 잡게 되고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논리에 따라 친유시민 성향이 주류가 되어 버립니다. 이때 있었던 사건들이 국참연과 행보를 같이하던, 지금은 정동영 진영의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는 정청래(싸리비)의원의 사건이고 미키루크의 사건입니다.

참고삼아 창피하지만 제가 서프에 올렸던 국참연을 비판하는 글의 링크를 하나 달아 드리겠습니다. 그 글의 조회수와 점수가 바로 당시 서프의 성향을 상징하는 숫자들입니다.

http://www-nozzang.seoprise.com/board/view.php?uid=512189&table=seoprise7&issue1=&issue2=&field_gubun=&level_gubun=&mode=search&field=title&s_que=국참연&start=100&month_intval=0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유시민은 우리당내에서 지속적으로 당권을 당원에게~ 라는 모토로 기간당원제 강화를 외치고는 있었지만, 우리당의 주류들은 지속적으로 당원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쪽으로 당헌을 수정해 가게 됩니다. 결국 유시민은 당내 왕따로 전락하는 과정을 밟게 되는데, 이 원인이 어디 있을까요?

민주당 출신으로 우리당에 건너온 의원들, 그리고 2004년 총선에서 새롭게 당선된 초선의원들까지도, 기존 정치권의 정당문화에 흡수되어 버려서 당원에게 권한을 주는 정당의 구조를 싫어했다는 뜻이 됩니다. 사실 우리의 정당문화는 해방이후 지금까지 제대로 발전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당원이 주인되는 정당이라는 것은 의원들에게는 사실상 매우 불편하기 짝이 없고, 매우 배고픈 문화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태생적으로 싫어 할 수 밖에 없고, 의원들의 이익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의 개혁은 매우 강력한 당원들의 뒷받침이 없는 한 불가능합니다.

막강한 권력을 누리던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이, 매양 지역구 소속의 당원들에게 감시나 당하고, 그들의 뜻에 따라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면, 기업체로부터 떡고물을 먹겠습니까? 이권 사업에 개입이라도 해보겠습니까? 지방의회의원들 선거할 때, 공천헌금이라도 좀 챙겨보겠습니까? 현재 국회의원 세비가 비싸다고들 하지만 음성적인 부수입이 없다면, 제대로된 정책하나 만들기에도 터무니없이 부족한 수준입니다.

한달에 천얼마 나오는 세비로 경조사비 쓰기도 바쁜데 지역구 여론조사 한번 하려면 수백에서 수천이 훌렁 날아갑니다. 자기 의원 사무실이라도 그럴싸하게 유지하려면 택도 없는 월급이죠.

결국 이런 종합적인 정치문화의 개선없이, 당원이 주인되는 정당을 만들자는 주장은 의원들의 자기 희생없이는 불가능하고 현실적으로 안되는 얘기였습니다. 그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던 유시민의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죠. 하지만 그 정당개혁은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는 것입니다.

일부는 유시민이 당권을 장악하기 위한 투쟁에 기간당원제라는 모토를 이용했다고 혹평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안될거도 모르고 순진하게 주장하는 바로라고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래도 옳은 주장을 했으니 옳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모든 것을 떠나 이제 실패했으니 책임지라고 그러는 겁니다. 의도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개혁당을 깨고 사람들을 이끌고 정당에 뛰어들어간 유시민이 약속했던 것이 고래를 삼켜 버리고 기성 정당문화를 개혁하자고 하는 것이었다면, 그게 실패했다면 애꿎은 개혁당만 망가뜨린 꼴이 되는 것이고, 이에 대한 책임은 누군가는 져야 되는것 아니겠습니까? 그책임은 신당으로 가서 대선후보에 출마한다고 해서 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설사 대선에 승리해서 유시민이 대통령이 된다한들, 정당문화가 개혁이 되겠습니까? 노무현도 못한 일을 대통령 유시민이라고 하겠습니까? 노무현이 당정분리를 해버리는 바람에 이제는 대통령은 정당에 힘을 쓸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 경우 유시민은 자기 대통령 되려고 개혁당 말아먹고, 정당개혁 말아먹은 사람이라는 비난이 오히려 거세게 몰아칠 것입니다.

이렇습니다. 역사는 흐르고 흘러서, 유시민은 개혁당에서의 의원직에 이어, 우리당에서의 압도적인 승리로 의원직을 유지했고 재선의원이 되었습니다. 노무현의 뜻에 따라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고, 우리당의 상임중앙위원을 역임했습니다. 이제 망가져버린 우리당을 팽개치고 신당에 가서 대선후보로 등록되어 컷오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동영 진영에서는 유시민은 같은당의 선의의 경쟁자가 아니라 완전 죽일놈이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제 생각에도 실제로 죽일놈은 그 쪽인데 말입니다.

유시민이 신당 경선에서 일등하는 상황이 오면, 정동영이나 손학규에 합류했던 사람들이 유시민을 같은 당의 대선후보로 성심 성의껏 지지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신당은 바로 갈기갈기 찢어져 버릴 것입니다.

더 우울한 것은, 정치인 유시민은 제가 말하는 이 모든 것들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한번 읽고서 금세기 최고의 명문이라고 감동했던 항소이유서의 유시민, 화염병을 들고 바리케이트에 뛰어드는 심정으로 움직이던 행동하는 정치인 유시민, 기간당원제를 수호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던 정치인 유시민, 제가 만나 직접 얘기를 나누고 감동했던 순수한 유시민은 이제 없습니다.

지속되는 모순과 정치적 선택 속에서 자기 생존을 위해 고민하는 노회한 정치인 유시민만 남아서 이제 대선 컷오프를 바라보고 있군요.

제가 시민광장에서 얘기했듯이 그 유시민이 최근에 쓴 책 "대한민국 개조론"을 읽어 보고서 저는 절망했습니다. 거기에는 과거에 제가 알던 유시민은 없어진지 오래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시민광장에서 그래도 유시민을 돕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유시민을 제외한 모든 정치인이 쓰레기라는 증거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정치적 비젼과 정 반대를 주장하는 정치인을, 단지 다른 놈들보다 거짓말을 좀 덜할거 같아서, 단지 다른 놈들보다 협잡과 부패는 좀 덜할거 같아서 돕겠다는 제 심정이 이해가 가십니까?

제 자랑은 아니지만, 아는 분의 강력한 추천으로 유시민 캠프의 글쟁이가 되어 합류할 뻔 했습니다.

요즘 시간이 좀 남기도 하고, 강권에 못이겨 하겠다고 해 놓고서도 집에서 여의도까지 가는 차속에서 마음을 바꿨습니다. 도저히 제가 지지하지도 않는 정치인을 위해 단 한줄의 글이라도 맘편하게 쓸 자신이 없더군요. 두고두고 후회할 일인것 같아서 중간에 계시는 분이 곤란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매몰차게 거절하고 돌아섰습니다.

과연 정치인을 지지하는 사람의 모습은 어때야 할까요?

아무 생각없이 그저 그 정치인의 외모와 말솜씨가 맘에 들어서, 뭔지 모르게 이끌려서 지지한답시고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다른 지인들에게 지지를 부탁하고 하는 것이 정당한 공화국 시민의 자세일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부탁이라면, 한번 더 생각해보고, 아니 두번 더 생각해보고, 내가 하는 행동은 무엇일까, 내가 하는 행동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과연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하는건지 알고 하는 것일까, 이런 고민을 십분 간격으로 하면서 하기를 권합니다.

그래도 부족하고 지나고 보면 낯 뜨거운 일을 수도없이 하는게 인생입니다.

긴 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제 이야기는 머리속에서 지워버리고, 순수한 자신의 의지에 따라 결정을 하고, 결정한 대로 행동을 하십시오.

그게 이땅에 살아가는 청년의 할 일입니다.

* 혹시 몰라서 말씀드리지만, 이 글의 내용에는 민감한 부분이 많습니다. 다른곳에 공개하고자 한다면 사전에 저와 상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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