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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보위원회 회의가 열린 20일 오후부터 21일 오전에 걸쳐 언론은 일제히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다"는 국가정보원의 보고를 익명의 정보위원을 인용해 보도했다. HEU(High Enriched Uranium, 고농축 우라늄)는 천연 우라늄을 핵연료나 핵무기로 사용하기 위해 농축시킨 것이다(관련 기사 '북한 보유한 원심분리기 20개로는 우라늄탄 못만들어' 참조). HEU 관련 정보위 회의 내용을 전한 주요 언론 기사의 제목과 보도 내용을 순차적으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일보>와 <연합뉴스>의 오보 사례 먼저 <한국일보>는 국정원의 답변을 통해 북한의 HEU 프로그램 존재 사실을 국회에서 처음으로 확인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국정원 "北 우라늄핵 개발계획 있다"... 존재사실 국회서 첫 확인 국가정보원은 2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 비공개 전체회의에서 2002년 10월 2차 북핵 위기의 원인이 됐던 고농축우라늄(HEU) 핵개발 프로그램 존재 사실을 인정했다고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정보위원들이 밝혔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이 파키스탄 핵개발 기술을 이용, 원심분리기를 수입해 HEU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북한은 HEU 프로그램 존재 사실을 공식적으로 부인해 왔다. 한국 정부의 경우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고 의심했지만 공식적으로는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한국일보> 인터넷판, 20일 18:06) <연합뉴스>는 6자회담 '2·13 합의' 이행과정에서 신고대상 포함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국정원)가 북한에 HEU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국정원, `北 HEU 프로그램 존재'" 6자회담 `2.13 합의' 이행과정에서 신고대상 포함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고농축우라늄(HEU)과 관련, 우리 정부는 북한에 HEU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원은 2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 비공개 전체회의에서 `북한에 HEU 프로그램이 존재하느냐'는 정보위원들의 질문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고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정보위원들이 밝혔다. 국정원은 그러나 구체적인 프로그램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지금까지 HEU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공식 주장해왔다.(<연합뉴스>, 20일 20:03) '친절한' <조선일보>는 통외통위 발언까지 덧붙여 오보행렬 가세 '친절한' <조선일보>는 이날 오후에 열린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서 제기된 HEU 관련 발언까지 취재해 기사를 보강했다. 이 신문은 김만복 국정원장뿐만 아니라 송민순 외교부장관도 이날 북한의 HEU 존재를 인정한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김만복 국정원장 "북 HEU 프로그램 존재" 김만복(金萬福) 국가정보원장은 20일 국회 정보위 비공개 전체회의에서 "북한에 고농축 우라늄(HEU) 프로그램이 존재하느냐"는 질문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고 복수의 정보위원들이 전했다. 송민순(宋旻淳) 외교통상부 장관도 이날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서 "오늘 정보위에서 국정원이 북한의 HEU존재를 인정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최재천 의원(무소속)의 질문에 "저도 그런 취지에서 북한은 HEU든 뭐든 어떤 (핵)프로그램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북한은 2002년 HEU 프로그램 존재를 시인, 2차 북핵 위기를 불러 왔으나 그후 입장을 바꿔 HEU 존재를 부인해 왔다.(<조선일보> 인터넷판, 21일 00:15)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위에서 인용한 세 언론 매체의 보도는 모두 오보이거나 오보에 가깝다. 물론 위에서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정보위 발표 내용을 보도한 다른 신문·방송·인터넷 매체의 HEU 관련 보도도 죄다 오보에 가깝다. 강조의 포인트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위의 세 기사를 사례로 들었을 뿐이지 오보의 정도나 수위는 다른 언론 보도도 대동소이하다. 우선 전산화된 국회 회의록시스템에서 'HEU'로 검색하면, 북한의 HEU 문제가 부각된 2002년 10월의 16대 국회부터 현재의 17대까지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록에서 15건이 검색된다(HEU라는 용어가 일반화되기 전에 사용한 '고농축 우라늄'이라는 용어로 검색하면 더 많은 33건이 검색된다). 김만복 원장, 3달 전에도 "북한의 HEU 프로그램 있다"고 인정
"조금 전에 말씀하신 것 중에 설을 제외하고는 국정원도 같이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같은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북한의 HEU를 통한 핵무기 개발은 현재 프로그램은 있으되 핵무기 개발이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국정원은 평가하고 있습니다."(이하 굵은글씨는 필자 강조) 요컨대, 30여년 동안 국정원에서 잔뼈가 굵은 정보맨인 김만복 국정원장 후보자의 답변은 ▲북한은 HEU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 HEU를 통한 핵무기(우라늄탄) 개발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 답변을 쉽게 풀어쓰면 북한이 '실험실 수준'의 HEU 프로그램은 보유하고 있으나 '생산시설 수준'의 HEU 프로그램은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결국 김만복 국정원장 후보자의 11월 20일 국회 정보위 인사청문회 공개 답변은 20일 "북한의 HEU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 김만복 원장의 답변을 정보위원들이 전한 간접 답변보다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거니와 시기적으로도 세 달 앞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HEU 프로그램 존재 사실을 국회에서 처음 확인했다느니, 한국 정부가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고 의심했지만 공식적으로는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느니 하는 것은 죄다 오보임을 알 수 있다. 국회가 확인한 것이 처음도 아니거니와 정부가 북한의 HEU 프로그램 존재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 또 북한은 2002년 HEU 프로그램 존재를 시인, 2차 북핵 위기를 불러 왔으나 그후 입장을 바꿔 HEU 존재를 부인해 왔다는 것도 엄밀히 말해 검증되지 않은 미국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다. 미국 정부는 북한의 HEU 프로그램을 입증할 증거를 한 번도 제시한 적이 없다. '북한의 HEU 프로그램 시인'도 미국의 주장일 뿐, 증거 제시 못해 알다시피 북한의 HEU 프로그램 보유 여부가 공론화된 것은 지난 2002년 10월초 당시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귀국후에 미국 정부가 "북한측이 켈리 특사에게 HEU 프로그램 존재를 시인했다"고 공표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를 계기로 미국 정부는 북한이 94년 10월 제네바합의를 위반했다는 구실로 중유 공급을 중단했고, 그러자 북한은 HEU 시인 발언 자체를 부인하면서 핵시설 봉인장치 제거, 국제원자력기구 사찰관 추방, 핵확산금지조약 탈퇴선언으로 맞서다가 마침내 핵실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북한의 HEU 프로그램 현황에 대해서는 국정원 간부(차장) 출신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정보통'으로 알려진 정형근 의원의 국회 발언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앞서 인용한 제5차 정보위(11월20일) 회의록에 따르면 정형근 의원은 김만복 국정원장 후보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북한이 고농축우라늄은 아직 생산단계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금번 핵실험은 플루토늄을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러나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개발에 대래서 우리는 깊은 우려와 관심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고농축우라늄 개발에 파키스탄 칸 박사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대통령이 작년(2005년-편집자주) 9월 발간한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1999년부터 북한 핵 기술자들이 파키스탄 칸 연구소를 방문해 우라늄농축용 원심분리기에 대한 기술 지원을 받았고, 칸 박사는 북한에 20여 기의 원심분리기와 유량계 등을 넘겨주고 북한을 방문해 기술을 지도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 가지 말들이 있습니다. 북한은 이미 우라늄농축에 대한 핵실험은 파키스탄과 함께 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리고 왜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냐면 고농축우라늄은 투발수단이 용이하기 때문에 미사일에 탑재해서 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점에 대해서 칸 박사가 북한에 지원한 고농축우라늄 기술과 장비 실태,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개발 실태에 대해서 후보자의 평가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북한 보유 원심분리기 2000개는 '설', 20여개가 '공인'된 정보 이에 대해 김만복 후보자는 정 의원이 인용한 '설'을 제외하고는 국정원도 같이 평가를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즉 '파키스탄의 칸 박사가 북한에 20여 기의 원심분리기와 유량계 등을 넘겨주고 북한을 방문해 기술을 지도했다'는 데는 같은 평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까지 북한의 HEU 보유에 대한 '공인'된 정보는 20여 기의 원심분리기이다. 핵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이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20여 기의 원심분리기는 우라늄핵무기를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험실 수준'에 불과하다. 통상 2000기 정도의 원심분리기를 가동해야 우라늄탄을 제조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다"는 미국의 주장은 통상 북한이 실험실(20기 수준)을 가동중인 것에 대한 우려가 아니라 우라늄탄을 제조할 수 있는 생산시설(2000기 수준)을 가동중인 것에 대한 우려로 해석된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대로 미국 정부 당국은 이에 대한 어떤 증거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14일 미국의 권위있는 핵과학자인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은 "북한이 보유한 원심분리기는 약 20기 정도로 고농축우라늄(HEU)을 생산하기에 부족하며, 북한이 커다란 원심분리기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2002년의 미국 정보는 '결함'이 있는 것"이라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연합뉴스> 등의 보도에 따르면, 2·13 북핵 합의 직전인 지난달 30일∼2월4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올브라이트 소장은 이날 방북 설명회에서 특히 미국 정보기관이 2002년 매년 수 개의 핵무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커다란 원심분리기 시설을 북한이 갖췄다고 평가했지만, 이는 '결함이 있는 평가였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HEU를 생산하려면 원심분리기가 수천 기 필요한데 자신의 추산으론 북한이 20기 정도만 갖고 있다고 말했다. 올브라이트 소장은 따라서 2·13 북핵 합의가 "이륙도 하기 전에 이를 죽이는 데 HEU 문제가 사용돼선 안된다"고 덧붙였다. 국가안보에 관한 기밀사안을 다루는 국회 정보위 회의 결과는 통상 국정원이 원내 교섭단체를 대표한 간사들과의 합의하에 언론 공개 범위와 내용을 사전에 조율해 발표한다. 국정원이 정보위에 보고하고, 교섭단체 간사들(한나라당 정형근 의원과 열린우리당 선병렬 의원)이 보고내용 가운데 언론에 공개해도 될 만한 아이템과 수위를 사전에 국정원측과 조율해 언론에 브리핑하는 형식이다. 정치인의 언론 플레이와 언론의 무지 그리고 정보기관의 방관이 빚은 '합작품' 결국 국정원이 북한의 HEU 프로그램 존재(혹은 보유) 사실을 인지(혹은 인정)했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뉴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정형근 간사가 '뉴스'인 것처럼 슬쩍 공개하고, 이런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 언론 매체들이 무턱대고 받아쓴 것이 이번 '북한 HEU 재논란 파동'인 것이다. 그런데 의아한 점은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국정원 역시 정보위의 '잘못된 언론 브리핑' 내용에 대해 어떤 이의나 해명을 제기하지 않은 사실이다. 국정원은 이날 정보위 브리핑을 근거로 언론이 보도한 '한미 FTA 합의 전망' 기사에 대해서는 'FTA 한·미정상 합의 전망 보도는 사실과 다릅니다'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한·미 FTA 타결 전망과 관련 한·미 정상이 합의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 일부 언론의 정보위발(發)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그러나 HEU 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명이나 보도자료를 내놓지 않았다. 결국 이번 북한 HEU 재논란 파문은 정치인의 언론 플레이와 언론의 무지 그리고 정보기관의 방관이 빚은 '합작품'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