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동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 제안’과 관련해 “안희정 리포트대로 실행했다”고 말한 게 논란이 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현재를 ‘개헌 제안 국면’이라고 했을 때, 모든 정치권이 공유하는 게 있다.
정치권 모두가 ‘개헌’의 필요성에 찬성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개헌 제안’ 국면에서 논란의 주제는 1. 개헌의 핵심내용이 ‘4년 연임제 개헌’이어야 하는 것인지, 혹은 2. 지금이 개헌의 적절한 시기인지에 있다. 공통의 인식 지점은 무엇인지, 반면에 논란의 지점은 무엇인지를 구별해서 보는 것은 중요하다. 개헌의 필요성에 모두가 공감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개헌 찬반 논의는 지금의 핵심 문제가 아니다.
정치권 모두가 개헌에 대해서 찬성해왔기에 안희정씨든, 누구든 과거에 개헌에 대해서 자기 생각을 말하고 개헌 지도를 그렸다는 게 문제될 수 없는 일이다. 박진, 주호영 의원 등을 중심으로 한 한나라당 의원들도 2005년 3월부터 ‘헌법을 연구하는 국회의원 모임’을 만들어 활동해왔다. 그 해 5월에는 ‘헌법 개정은 시대정신의 반영입니다(하나출판)’라는 책까지 냈다는 것은 기억에 담아둬야 할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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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을 연구하는 국회의원 모임에서 출간한 <헌법개정은 시대정신의 반영입니다> ⓒ 프로메테우스 임세환 |
한나라당이 2007년 1월의 시점에, 개헌에 대한 한나라당의 당론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차기 정권에서 개헌을 하자고 말하는 것은 하나마나 한 말일 수 있다. 개헌에 찬성해왔으면서, 구체적인 개헌에 대한 입장을 말하지 않고, 누군가 개헌을 제한했을 때 “나중에 하자”고 말하는 것은, 하나마나한 말이 되기 쉽다. “나중에 하자”는 말과 “하지 말자”는 말은 상황에 따라 같은 말이 될 수 있다.
참고로 ‘헌법개정은 시대정신의 반영입니다’라는 책에도 드러나는 것처럼, 헌법을 연구하는 국회의원 모임은 권력구조, 헌법의 영토조항, 통일조항, 한반도에서의 주권의 문제, 기본권 사항, 행복추구권, 환경권, 참정권의 범위, 헌법재판소, 경제헌법 등등을 폭넓게 논의했다. 내각제 개헌도 중요한 화두였다.
개헌의 필요성 VS 4년 연임제 개헌
개헌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정치권이 ‘개헌’이 화두가 됐을 때, 개헌의 내용을 가지고 경쟁하지 않는 상황이 서로가 서로에게 ‘정략적’이라고 성토, 비난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개헌에 찬성한다면 ‘개헌’ 논의가 불거졌을 때, 개헌의 주제에 대해서 우선 각 당이 당론을 먼저 밝히고 그 다음에 시기를 논하는 게 필요하다. 막연히 ‘나중에 하자’고 말하는 것은 책임정치가 아니다.
“87년 체제를 넘어서는 시대정신이 필요하다. 87년 체제가 만들어놓은 과도기적 헌법인 현행헌법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 작업을 미룰 수 없다.” 이병석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2005년 2월 1일, 한나라당 원내부대표직을 물러나면서 한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지난 9일의 담화문에서 2007년이 “87년 6월 항쟁의 결실로 개정된 현행 헌법이 시행된 지 20년을 맞는 해”라며, “그러나 2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우리 헌법은 이제 새로운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규범을 담아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87년 헌법의 개정 문제는 정치권과 학계가 폭넓게 동의해 온 문제다. 따라서 한나라당 등이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 제안’을 “정략적”이라고 비판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차기 정권에 개헌 논의하자”는 말을 “정략적”이라고 맞받아치는 상황에서는, 개헌 논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핵심 문제가 아니라, 정략적이지 않은 형태로 개헌을 논의하는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바람과는 반대로 2007년 대선 이전에 개헌 국면이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은 형세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은 ‘개헌 제안’ 국면이고, ‘개헌 논의’ 국면이다. 개헌 제안이 등장했을 때, 개헌에 대한 풍부한 논의를 하는 것이, 차기 정권에서의 개헌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87년 헌법은 “국민주권의 실종”
이병석 국회의원이 말했던 것처럼 개헌을 이야기하는 것은 ‘87년의 상황’, ‘87년의 시대정신’을 뛰어넘는 일이다. 그 방식과 넘어서기를 위한 중심 가치에 대한 이해는 정치세력별로 다르겠지만, 넘어서야 할 대상이 87년 체제라는 공통점이 있다.
87년 이전에는 민주화가 시대의 요구였다. 87년의 개헌 국면에서 민주화의 요구는 ‘직선제 개헌’에 대한 요구로 응축됐다. 그래서 87년의 개헌은 ‘직선제 개헌’이다.
그러나 직선제 개헌이 곧 민주화는 아니었다는 게 지난 20년의 국가 운영과정에서 드러났다는 게 87년 헌법을 바라보는 세간의 평이다.
인권실천시민연대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대통령의 말처럼 시대가 변하면 새로운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규범을 만드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1987년 헌법이 담고 있는 가치나 정신이 개헌을 얘기할 만큼 변했는가 하는 점이다. 특히 개헌구상의 핵심으로 얘기되는 대통령 4년 중임과 국회의원 임기와 대통령 임기의 일치를 논의하는 것이 어떠한 시대정신의 변화를 반영한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덧붙여 “적어도 이 두 가지 내용의 개헌과 관련해서는 거창하게 시대정신을 얘기할 문제가 아니라 '정치권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일 것”이라고 했다. “1987년 헌법의 정신과 가치에서 몰아내야 할 정신과 가치는 여전한 군사문화의 잔재와 사법특권을 옹호하는 제도이며, 새로이 헌법에 담아야 할 시대정신과 가치는 더욱 강화된 기본적 인권의 보장”이라며, 4년 연임제 개헌만을 논의하는 원포인트 개헌안에 문제제기 한 것이다.
또 금민 한국사회당 대표는 인터넷신문 CNB뉴스와의 인터뷰에서 “87년 6월 항쟁의 민주화 운동세력이 표방하는 정의는 사회적 진보가 아니라 정치적 진보였을 뿐”이라고 했다.
87년 헌법에 대한 반성의 과정에서 키포인트는 기본권의 확대, 국민주권의 확대에 있다는 주장들은 의미가 있다. 개헌 논의를 무용지물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정치권이 서로를 정략적이라고 하면서 개헌 논의를 회피하는 상황을 극복하는데도 유용하다.
단기간에 폭발적 힘에 의해서 이루어진 87년 헌법은, 민주화 헌법으로서는 미완성된 헌법이었다. 직선제라는 명분을 통해 민주화가 일부 달성됐으나, 동시에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시키며 국민주권을 상대적으로 격하시킨 개헌이었다.
대통령의 ‘4년 연임제 개헌 제안’ 담화문의 카타르시스는 대통령은 혼자서 개헌을 발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현재 헌법에서는 대통령의 권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었다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현행 헌법은 레임덕의 대통령이 한방에 정국의 주도권을 가진 정치인으로 등장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임을 대통령이 이번에 몸소 보여준 것이다.
‘4년 연임제 개헌’ VS ‘국민주권 개헌’
반면, 지난 2003년과 2004년의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국민소환제 개헌’이 중요한 화두가 되어야 했던 것처럼, 혹은 최연희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 때, 국민들의 분노가 정치권의 결정에 반영되지 못했던 것처럼, 국민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는 헌법 안에 마련돼 있지 않다. 한미FTA가 국민의 반대와는 무관하게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것도 헌법상에 ‘국민발안제’와 같은 국민주권적 요소가 제도화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선투표제 개헌’도 국민주권의 실현과, 대통령 권력 견제를 위해 그 필요성이 계속 제기돼왔다. 당선된 대통령의 대표성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결선투표제는 국민의 정치적 다양성을 보장하는 제도로 기능한다.
직선제와 더불어 87년 헌법의 상징인 헌법재판소 관련 개헌도 기본권 보장과 국민주권 보장을 위해 필요하다는 지적이 계속 있어왔다. 헌법재판소는 사법부의 제왕적 권력을 견제하고, 헌법의 기본권을 보장하고자 87년 개헌을 통해 신설됐다. 그러나 견제를 받아야할 사법부의 수장 대법원장이, 더군다나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도 않은 대법원장이 헌법재판소 권력 구성에 있어 3분의 1의 권리를 갖도록 하는 현행헌법(대법원장이 헌법재판관 9명 중 3명 임명)은 헌법재판소 신설 취지를 무색케 해서 논란이 돼왔다.
지금 현재의 개헌 논의국면은 노무현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를 통해서 시작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 안정을 최우선의 과제로 이야기하면서 ‘4년 연임제’라는 원포인트 개헌만을 제안했다. 대통령이 지금의 개헌 논의의 프레임을 제한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처음부터 만고불변의 프레임이 아님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국민소환제 개헌이 화두였던 때도 있었고, 내각제 개헌이 화두였던 때도 있었다.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인권실천시민연대가 지적한 것처럼, 4년 연임제 개헌은 시대정신과는 무관한 “정치권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는 게 차라리 더 솔직”할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이 “정략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정치권과 학계, 국민들로부터 쏟아지는 것도, 지금의 개헌 제안 국면이 87년 헌법 개헌 과제의 핵심 내용을 다 비껴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4년 연임제만을 내세운 원포인트 개헌은, 더군다나 대선과 총선을 함께 치르는 방식의 개헌은 대통령의 권력을 더 강화하는 방식의 개헌이라는 측면에서, 그 동안 제기돼왔던 개헌 과제와는 무관하기까지 했다. ‘국정 운영의 안정성’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 취지를 뒤집어보면, 정치적 역동성도,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의 보장도, 국민주권도 없는 ‘안정’을 읽을 수 있다.
개헌의 필요성에 모두가 동의하는 상황에서 개헌 찬반 논의는 사실 재미가 없다. 개헌 논의 국면이 열렸을 때 해야 할 일은 개헌의 내용과 방향을 놓고 국민이 생각하고 말하게 하는 일이다. ‘4년 연임제 원포인트 개헌’을 선택할 것이지, ‘국민소환제, 국민발안제 도입 개헌, 결선투표제 개헌, 헌법재판소 개헌, 기본권 개헌, 국민주권 개헌’을 선택할 것이지를 묻는 것이다. 과연 어떤 개헌 논의가 정략적이지 않은 개헌 논의인가의 문제도 여기에 맞물려있다.